사단법인 희망씨는 노동자 중심의 나눔문화 확산을 통해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생활문화운동을 한다는 목적으로 2013년 11월5일 설립됐다. 희망씨는 노동자들의 직접 실천을 기반으로 다양한 나눔연대사업을 한다. 취약계층 아동청소년 지원사업인 ‘희망울타리-희망키움사업’, 한국에서 이주노조 활동을 하다 네팔로 귀환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네팔아동학교보내기사업’, 조합원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진행하는 ‘과일나눔’ ‘집수리’ 사업이 대표적이다. 희망씨 활동가들과 사업 참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편집자>

▲ 이은선 희망씨 상임이사▲ 이은선 희망씨 상임이사

희망씨는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하거나 생활에 어려움은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가정을 지원한다. 올해도 연초부터 어김없이 관련 문의들이 들어왔다.

기초수급으로 수년간 경제적 어려움에 놓인 지원(가명)씨는 ‘자립’을 위해 몇 년간 차근차근 취업을 준비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학교 방과후 교사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올해 첫 소득신고를 했다. 소득신고 과정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지위에 있으면서 ‘자립’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고단하고도 생활에 득이 되지 않은 일인지 경험했다고 한다.

그간 배우자의 오랜 투병 생활로 간병을 해야 했고, 어린 자녀의 양육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던 지원씨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지원씨 가정은 기초생활수급가정이 됐다. 수급자가 되면서 지원씨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4인 가족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모든 지원은 ‘수급자’임을 증명해야만 가능했다. 아이들의 교육비 지원까지도 학교에 ‘가난’을 증명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남편의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기초생활수급가정에서 홑벌이 가구로, 차상위계층으로 변동됐다. 수급비 또한 다소 줄어, 남편의 벌이와 수급비로는 생활이 여의치 않았다.

자녀가 돌봄이 필요한 시기를 벗어나자 가정의 경제적 자립을 계획하며 지원씨는 취업을 위한 준비를 했고, 드디어 지난해 방과후 교사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긴 했지만 맞벌이하는 동안 맡아 볼 이가 없는 터라 아이들 ‘학원비’ 등의 지출이 추가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과 육아, 가사노동을 병행하기가 쉽지는 않은 시간들이 몰려왔다.

그렇게 1년 부지런히 노력해 일터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맞벌이 가족으로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빚이 늘어나고 있음을 체감했다. 지원씨가 월 160만~170만원의 경제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맞벌이 가구로서 소득 기준을 넘어서서 얼마간이라도 지원받던 ‘임대료와 의료비, 자녀교육비, 문화활동비’ 등이 모두 중단됐다. 지원씨 부부가 한 달 동안 일을 통해 벌어들인 수입과 한 달 공공지원으로 받은 현물과 현금을 계산해 보니 거의 차이가 없었다. 빚은 더 늘어났다.

실제 경제활동을 하는 이유는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자립할 기반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원씨는 경제활동을 위해서 ‘교통비·식비·통신비’ 등 최소한의 경비가 추가로 필요했다. 가정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고생이 더해져 더 버거운 삶이 된 것 같다는 한탄을 하며 지원씨는 눈물을 보였다.

철민(가명)씨 가정은 초등 자녀가 경계선 장애로 꾸준한 수술과 재활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수술과 충분한 재활을 하면 자녀의 일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철민씨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녀의 치료를 미룰 수는 없었다. 철민씨 부부는 닥치는 대로 자녀 수술비와 치료비를 벌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런데 막상 자녀가 수술을 하고 수술비를 납부하는 순간 철민씨는 좌절했다. 철민씨 가정의 소득이 증가해 의료수급권이 박탈됨으로써 오롯이 자부담으로 모든 비용을 감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한 번 병원에 갈 때마다 50만원은 족히 들어가고 수술이나 시술, 그리고 중요한 검사를 할 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이 필요했다. 결국 철민씨 부부는 2금융권 대출, 카드론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3년이 지나 결국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늘어난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진우(가명)씨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머물고 있던 시설을 나왔다. 시설을 나오면 오롯이 혼자서 주거비와 생활비 그리고 학비까지 감당해야 한다. 대학에 합격하고 등록금은 한국장학재단에 국가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생활비였다. 한 달에 수십만원인 월세와 교통비, 그리고 식비와 통신비만 하더라도 100만원은 족히 들어가는데 60만원 나오는 수급비로는 턱도 없는 일이었다. 진우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상황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들인 수입이 소득으로 잡히면, 일부 비율 산정이 된다고는 하지만, 수급비를 받을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우씨는 어떻게 생활비를 벌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희망씨가 만나고 있는 가정의 문제는 결국 현재 우리나라 복지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된다. 선별적 복지의 한계, 아동청소년 복지에 관심이 없는 정부,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갖춰지지 않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희망씨가 만난 수급자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 내 가정을 꾸리고 한 사회 일원으로서 나도 오롯하게 내 몫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의미 없고 힘들고 왜 사서 고생을 하나 생각이 들어도 내 스스로 수급권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데 정말 힘들어요. 때로는 포기하고 싶어요.”

‘기초생활수급가정’이라는 낙인 속에서도 수급권을 유지하는 쪽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정들. 가정 주요 소득원의 실직이나 산업재해, 건강상 근로의 어려움, 가족구성원의 중대질환 등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런데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로 빈곤선 이하로 진입하게 되면, 대부분 가정이 다시 그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도적 한계 속에서도 오늘도 ‘자립’을 위한 수급 가정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좌절하지 않고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연대로 지지하고 지원하며, 제도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 내야 한다.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