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희망씨는 노동자 중심의 나눔문화 확산을 통해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생활문화운동을 한다는 목적으로 2013년 11월5일 설립됐다. 희망씨는 노동자들의 직접 실천을 기반으로 다양한 나눔연대사업을 한다. 취약계층 아동청소년 지원사업인 ‘희망울타리-희망키움사업’, 한국에서 이주노조 활동을 하다 네팔로 귀환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네팔아동학교보내기사업’, 조합원들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진행하는 ‘과일나눔’ ‘집수리’ 사업이 대표적이다. 희망씨 활동가들과 사업 참여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편집자>

▲ 희망씨▲ 희망씨

10월18일 아침, 서울 ○○구의 어느 한 주차장 앞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날은 구청과 복지관에서 긴급하게 주거환경개선이 필요한 가정이라고 연락을 준 가정의 ‘집수리’가 있는 날이었다. 가정은 어머니와 20대 아들, 10대 딸, 일곱 살 아들 그리고 20대 아들의 8개월 된 아기. 이렇게 3대가 거주하고 있었다.

희망씨가 집수리 진행을 위해 첫 방문을 했을 때, 가정은 8개월 된 아기가 양육되는 환경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희망씨는 긴급하게 환경개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구청과 복지관과 상의해 아기의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판단 아래 기존에 아기가 쓰던 물건들은 모두 버리고 수납장, 아기 이불, 배게 등을 구매했다. 주변 단체에는 아기 옷이나 아기 젖병 같은 후원물품을 요청했다.

그러나 작업은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방마다 정리돼 있지 않은 가정의 물품들이 즐비했다. 물품을 옮기거나 벽지를 뜯는 과정 여기저기에서 바퀴벌레들이 튀어나왔다. 냉장고 칸칸마다 새까맣게 바퀴벌레 알들이 있었다. 싱크대 서랍을 열고는 기겁했다. 물건을 옮기면 새까맣게 모여 있던 바퀴벌레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곤 했는데, 처음에 그 모습을 본 조합원들은 기함할 듯 놀랐지만 시간이 지나자 손으로 발로 하나둘씩 거의 기계적으로 바퀴벌레들을 퇴치해 가면서 물건들을 버릴 것과 유지할 것으로 정리해 나갔다.

작업하는 내내 조합원들의 머리 위로 바퀴벌레가 떨어지고, 옷 속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마스크에서도 기어 나오고,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어떤 조합원은 바퀴벌레 알레르기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중도에 집으로 돌아갈 정도였다.

▲ 희망씨▲ 희망씨

이 가정의 집수리는 같은 동네 주민들에게도 화제였다. 가정에서 나온 엄청난 폐기물들로 인해 구청에 민원이 속출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구청 청소과에서도 나오고, 다양한 구청 주무부서들이 총출동했다. 그것이 오히려 잘된 측면도 있다. 현장에 있던 복지과와 협의해 폐기물을 한 번에 구청에서 처리할 수 있었고, 도저히 다섯 명이 취식을 했다고 상상이 가지 않는 싱크대는 현장에 나와서 이 상황을 지켜본 청소과 과장이 직권으로 교체하기로 약속했다.

상황이 이러니 집수리 과정 내내 조합원들의 몸도 마음도 당연히 힘들었다. 그러함에도 8개월 된 아기를 생각하면서 묵묵히 작업을 이어 갔다. 아침 10시부터 시작해 오후 6시가 다 돼 마무리된 이 가정의 집수리를 열여섯 명이 온종일 달라붙었는데도, 짐 정리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로 마감하게 돼 마음 한편이 매우 무거웠다고 한다.

사업이 마무리되고 어머니께서 끝내 눈물을 보이셨다.

“잘 살겠다. 이제 잘 살아 볼 용기가 난다. 잘 살겠다. 정말 고맙다.”

깊은 우울감에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어머니께서 최근에 구청과 연결이 되며 용기를 내어 지역사회와 처음 접촉하게 된 것이 이번 집수리였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것을 놓고 살아왔는지도 모르는 한 가정에 살아갈 힘을 주었다는 것 자체로 우리 조합원들은 그 힘든 노동을 마치고 기울이는 술자리에서 다들 안타까움과 자부심이 섞인 한마디씩을 했다.

“사실, 나는 집수리 오는 게 힘들다. 이분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에게도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 같다.”

“이 가정은 희망씨에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 주시면 좋겠다. 다시 희망을 놓지 않도록 우리가 좀 더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힘들었는데, 어머님 모습을 보면서 뭉클했다. 우리의 오늘 하루가, 그리고 우리 노동조합이 어떤 가정에 살아 낼 용기를 주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 희망씨▲ 희망씨

희망씨는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각 지부의 임금·단체교섭 과정에서 지역연대를 위한 사회공헌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딜라이브지부(옛 씨앤앰지부)의 노사사회공헌기금이 12년 동안 30억원이 조성됐고, 옛 티브로드지부에서도 2014년에는 3억원을 조성했다.

▲ 김은선 사단법인 희망씨 나눔연대국장▲ 김은선 사단법인 희망씨 나눔연대국장

그리고 딜라이브비정규직지부·홈초이스지부·LG헬로비정규직지부·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HCN지부 등 대부분 지부가 액수에 상관없이 기금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희망연대본부는 기금조성뿐만 아니라 서울 각 지역, 의정부, 남양주, 전주,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장애인, 이주민, 복지사각지대 가정, 아동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과 나눔을 통한 연대를 실천해 오고 있다. 희망씨가 전개하는 환경개선사업도 이 과정의 하나다. 노조에서 기금을 확보하고, 해당 조합원들이 참여해 지역사회와 직접적인 나눔을 실천하는 과정을 매년 전개하고 있다. 이날도 딜라이브지부 조합원들과 LG유플러스한마음지부 조합원들 16명이 이 가정의 집수리를 위해 참여했다.

혹자들은 노동조합이 자기투쟁에만 매몰돼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업장 안에서는 나의 권리 확보에도 최선을 다하고, 사업장 밖에서 지역과 나눔하고 연대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노동조합 활동이라면 너무 멋지지 않나?

머리로만 느끼지 않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노동조합 활동! 나누고 연대하는 것도 권력자들에게 선점당하지 않는 의미 있는 활동을 희망씨와 함께 펼쳐 나갈 노동조합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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