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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낙인·상실감·생활고… 남은 가족도 보듬어야(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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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희망씨 조회 208회 작성일 2022-08-31 17: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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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상실감·생활고… 남은 가족도 보듬어야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안전 일터 우리가 만듭니다] (3) 산재, 가족에겐 사회적 재난


(사)희망씨가 공공상생연대기금와 공동으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산재 가족에게 닥친 사회적 재난의 특수성을 고려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희망씨 제공남편이 과로로 숨진 뒤 가까스로 산업 재해를 인정받은 아내 A 씨는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던 트라우마로 정신적·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다. 산재 피해자 가족이라는 낙인과 ‘불쌍한 존재’라는 주변의 시선은 남은 A 씨와 가족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 하지만 A 씨와 가족에 닥친 가장 큰 어려움은 갑작스러운 경제력 상실에 따른 막막해진 살림살이였다.


신청·승인 과정서 적잖은 고통

법률서비스 위한 지출도 큰 부담

남겨진 가족, 서로의 상처 외면

가족에 대한 실질적 지원 절실



작업 중 두 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산재 근로자의 아내 B 씨는 자신이 유일한 자녀 돌봄 책임자로 남게 되자 큰 부담감이 밀려왔다. B 씨는 중증 장해를 입은 남편을 돌보며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자녀의 돌봄까지 도맡아야 하는 처지다. 남편의 사고로 가족 간 소통이 줄고, 정서적 유대감마저 사라졌다. 이로 인해 B 씨 가족은 자녀의 심리적 방황 등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산업 재해는 피해 당사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에게도 고통이 전가되는 ‘사회적 재난’이다. 산재 피해자 가족은 가족을 잃거나 가족이 크게 다친 데 대한 정신적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데다, 달라진 가족 관계 속에 가족 저마다 짊어져야 할 역할이 커지게 된다. 생계를 책임졌던 가족의 상실에 따른 생활고와 사회적 관계 변화에 따른 단절과 고립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또 다른 시련이다.


지난해 (사)희망씨가 공공상생연대기금과 공동으로 추진해 내놓은 ‘산재(사망) 노동자 가족생활 실태 및 경험에 관한 연구’ 발표 자료에 따르면, 산재 가족들은 가족의 산재 피해 외에도 다른 추가 피해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사고사, 과로사, 중증 장해 등 3가지 유형의 산재 피해자 가족 8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통해 그들의 경험과 욕구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사고사와 과로사, 중증 장해 피해 가족들은 공통적으로 산재 신청과 승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산업 재해가 무엇인지, 산재 신청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노무사 등 전문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법적 절차, 산재 책임 입증을 위한 증거 수집의 어려움 등으로 산재 신청과 승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다.

또 산재 가족들은 가족의 사망, 중증 장해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 자체로도 힘든 상황에서 생계를 책임졌던 주 부양자의 이탈과 가족 관계의 위기를 겪으며 저마다 맡아야 할 가족의 역할이 커지고 생계, 간병, 산재 신청 등 맡아야 할 일이 많아진다. 일부 가족에겐 일과 책임이 몰리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부담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 사고 이후 가족 간 유대감이 약화되면서 사회적 단절과 고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산재 신청 과정에서 회사 동료나 회사와 갈등을 경험한 경우에는 관계적 상실감과 무력감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특히 산재 피해자 가족이라는 낙인과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에 노출된 가족들은 더욱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절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재 가족들은 산재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시간이 갈수록 중첩된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이들은 가족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아 서로를 돌보기 어렵고 같은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남겨진 가족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도 외면하거나 비난하기 쉽다.


주 부양자의 사망 또는 중증 장해로 남겨진 가족들은 당장 생계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정기적인 소득이 사라진 가족은 급히 빚을 갚아야 하고, 산재 신청과 승인을 위한 법률 서비스에 드는 지출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어린 자녀를 둔 산재 가족은 자녀 돌봄과 복잡하고 긴 산재 신청·승인 과정에서 바로 취업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간병과 자녀 돌봄을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 산재 가족들은 일상이 금세 무너진다. 원만했던 가족 관계가 깨지면서 자녀들의 돌봄이나 발달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커 가족 전체의 정서적 건강도 위태로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산재 가족에 대한 사례 연구가 산재 유형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재 가족에 대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지원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은주 근로복지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산업 재해가 사고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에게도 상당한 시련과 고통을 주지만, 산재 피해 당사자에 대해서만 대부분의 연구가 이뤄졌을 뿐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족을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다”며 “이제는 산재로 인해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사회적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고 밝혔다.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나 그 산하에 산재와 관련된 각종 공적 지원이 가능한 기관이나 센터가 있지만 산재 가족만을 위한 지원이 가능한 곳은 없다”며 “산재 사망이나 중증 장해 이후 가족 공동체가 급속하게 파괴되는 만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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